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가장 짜증이 나는 것 중에 하나가 방해 세력이다. 정치도 아닌고, 발표를 하는데 웬 방해 세력?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방해 세력은 분명히 있다. 사실 방해 세력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히 얘기를 하면 발표 중간중간에 질문을 해서 여러분의 집중력을 깨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변했을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발표를 하면 많은 경우가 끝까지 발표를 듣고 나중에 한꺼번에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미국에서 발표를 하면 중간중간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미국식 발표와 실시간 질문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당장 궁금한 점 혹은 애매한 점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다음 슬라이드 내용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발표를 할 때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한다.
그런데, 발표가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의 경우 혹은 영어로 발표를 처음 하는 경우, 이렇게 질문이 들어오면 리듬이 깨져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위에서 달달 외우지 말고 흐름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달달 외우기만 했다면, 누군가 영어로 중간에 확 들어와 버리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일단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질문이 들어오니 답을 해야 하는데, 이게 어려울 수가 있다. 어찌어찌해서 답을 했어도 줄줄 외웠던 그 흐름은 이미 깨졌기에, 다음 슬라이드를 말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1분 있다가 다시 질문이 들어오면 이때는 내가 연습했던 리듬은 이제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한다. 그래서 내가 방해 세력이라 불렀던 것이다.
여러분이 열심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특별한 이유도 없어 (혹은 의도한 이유를 가지고) 방해하려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이 회사 내에서 여러분이 기획한 프로젝트를 발표를 하는데, 부서의 높은 분이 계속 지적질을 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을 것이다. 이럴 때 흔들리지 않는 것이 혹은 자신의 동요를 최소한 하는 것이 프로이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상대를 떠 보기 위해서 이렇게 거친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발표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그러나 발표자의 입장에서는 듣는 사람을 미리 가려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방해 세력이 있을 때에는 이렇게 대처하라. 질문을 들어보고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다른 의미가 있는지 파악을 해야 한다. 내 발표에 애매한 점이 있거나 듣는 사람이 이해를 못 해서 하는 질문은 가만히 들어보면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발표를 방해하거나 다른 의도로 딴죽을 거는 경우는 처음 한두 번 대응을 해주면 충분하다. 일단 상대방이 일부러 혹은 의도적으로 딴죽을 건다고 생각이 되면 그대로 두면 안 된다. 내가 지난 몇 주 혹은 몇 달간 준비한 귀한 프레젠테이션이 그 사람(들) 때문에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이렇게 대답하라. “좋으신 질문입니다. 나중에 관련 내용이 더 나오니, 그때 합쳐서 같이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대부분은 물러난다. 좋은 질문이라고 마음에는 없지만 일단 치켜 줬으니, 질문자의 마음이 상할 일은 일단 없다. 그리고 뒤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고 했고, 같이 합쳐서 대답을 하겠다고 했는데 굳이 지금 대답을 하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대답을 했는데도 계속 방해를 한다면, 그것은 딱 한 경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작정하고 여러분의 발표를 방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이 학교나 회사 입사를 위한 발표를 하고 있다고 하자. 심사 위원 중 한 명은 여러분이 아닌 다른 지원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 친구의 딸이 지원을 했을 수도 있고, 선배의 부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은 경쟁 입찰 발표를 하는데, 입찰 공고를 낸 회사의 직원 하나가 은근히 다른 경쟁 회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이 역시 후배 혹은 선배의 부탁으로 그 지인의 회사를 선택하게 도와 달라는 청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부른다. 다시 위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분명히 나중에 대답을 합쳐서 하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질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청중들 중 많은 수가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분위기가 싸한 느낌이 있다. 이럴 때는 좌장 격, 혹은 제일 시니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즉 결정권을 가장 크게 가질 것 같은 사람에게) 얘기를 하라.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데, 중복된 질문이 계속 나오니 나중에 합쳐서 대답을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면 많은 경우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상황에서 계속 당신의 발표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그리 흔하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일어난 일이고 여러분이 계속 한국말이든 영어로 하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면접자 중 일부는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당신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꿋꿋이 나가도록 해라. 만약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에 걸렸어도 결과가 안 좋아도 낙담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룰이 없이 일을 진행하는 학교나, 회사에 입사를 해 봤자, 그런 곳에 물건을 팔아 봤자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당신은 이런 상황을 직접 경험할 행운 (?)도 갖게 되었다. 나중에 더 중요한 순간에 당황하지 않을 좋은 경험을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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