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소소한 일상/북 리뷰

<<3억 5천만원의 전쟁>> (이종룡, 호랑나비 출판사)

Happy Guy in SV 2020. 10. 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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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Debt). 좋은 단어는 결코 아니다. 그리고 어른 치고 여기서 자유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빚이라는 것을 지고 살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카드 대금, 자동차 할부, 전세 대출, 내 집 마련 대출 등등….. 일생이 빚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나는 어떨까? 지금까지 크게 사업을 일으키거나 (그래서 큰 성공도 실패도 없다), 도박이나 술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한 적도 없다. 비교적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밖에 자주 나가지 않으니 돈을 쓸 일도 별로 없다. 특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미국의 사회 특성상 남의 이목을 인식한 지출 (고급 자동차, 명품 옷, 가방 등)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꽤 많은 빚이 있다. 수 억원의 빚이 있으니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작년에 새 집을 사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만약에 계획대로 집을 샀다면 지금 수 억이 아닌, 수십 억의 빚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빚은 사채나 신용카드 대금이 아닌 집 담보 대출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대부분은 다운 페이라고 부르는 20%의 현금을 내고 집을 산다. 자연히 집 값의 80% 정도는 모기지라고 부르는 빚으로 남게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웬만한 싱글 하우스 (단독 주택)15-20억 정도를 한다 (요즘 한국의 서울 아파트 가격을 들으면, 오히려 여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집값이 싸게 느껴진다......). 따라서 집 한 채를 일반적인 경로로 구입을 하면 10-15억 정도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 구입을 하기 위한 빚이던, 노름 빚이던, 집 구입 모기지 비용이든, 빚은 갚아야 한다. 일정 금액의 원금과 약정된 이자는 매달 내야 한다. 어떤 종류의 빚이든 내가 벌어서 갚아야 하는 것은 똑같다.

 

요즘에 나는 어렵게 고생해서 살았던 얘기를 다루는 책을 자주 찾는 것 같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까, 어려운 사람의 경험담을 읽다 보면 투정 부리는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거봐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고생을 했는데, 내 생황은 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혹은

힘들다고 투정 부린 내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 분은 정말로  큰 고생 했네등의 피드백을 스스로 원하는 것 같다. 각자가 아무리 내가 힘들다고 생각해도, 나보다 훨씬 힘든 사람은 어디든지 있다. 특히 비교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한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 사는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 주변에 다들 그렇게 사니까 (얼마나 큰 혜택을 받는지) 못 느끼는 것 뿐이다. 하루에 $1 (혹은 그 이하)로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 수 억 명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얼마 전 킵 고잉이라는 책을 읽다가 책 속에 소개된 저자 이종룡 씨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 왕이라는 별명으로 꽤 유명했었나 보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7-8개나 하고 큰 빚을 갚아나가는 스토리는 확실히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좀 다른 면이 있다.

 

호기심으로 이 분과 관련된 유튜브를 찾아보고, 이 분이 쓴 책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35천만원의 전쟁>>이다.

 

간략하게 이 분이 큰 빚을 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일을 하던 이종룡 씨는 전주의 시계 도매점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이 싼 가격에 도매점을 내 놓는다는 얘기를 듣고, 빚을 내서 덜컥 시계 도매점을 인수를 하게 된다. 그 뒤 그럭저럭 운영이 되던 시계 도매점은 IMF때문에 부도를 맞는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많은 가게와 회사들이 문을 닫고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던 때가 (아니 더 처절했던 때가) IMF 시절이 아닐까 한다. 그때 생긴 빚이 35천만원이고 그때부터 저자인 이종룡 씨는 하루에 7-8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빚을 다 갚게 된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아르바이트로 35천만원을 갚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살고 있는 가족들도 살 집이 있어야 하고, 먹고 살 생활비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상상만 해봐도 주인공과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초가 눈에 선하다. 심지어 스스로 생니 두 개를 뽑아 버리기도 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집에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아내가 울고 있더란다. 그 모습을 보고 본인의 생니 두 개를 스스로 공구를 이용해서 뽑아 버린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러날 기회를 없애고 맹세를 한 셈이다. 반드시 이 빚을 갚고 가족을 원 상태로 돌려 놓겠다고......한 남자의 절규이자 가장으로서의 사자후였던 것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이 분의 하루 일과가 나와있다. 하루 20시간 일하고 400 킬로를 이동했단다. 등을 대고 자는 잠은 하루에 2시간이 전부였다. 20대 청년의 얘기가 아니라 40대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럴 정도의 정신력과 체력을 갖출 수 있을까? 반성. 반성. 반성.

아마도 이런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고, 세상에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들. , 스스로 투정 부릴 때가 아니라 용기를 내서 한번 더 시도할 때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 책은 완벽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읽는 내내 감탄과 주인공에 대한 측은함, 그리고 나에 대한 반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주인공은 10여년 동안의 상상도 하기 힘든 노력으로 3억 5천만 원의 빚을 다 갚게 된다. 중간에 그 사연이 방송 등에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니 우리 사회의 마음 따뜻한 분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하지만, 가슴 아픈 소식은 주인공이 결국에는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토록 어렵게 빚을 다 갚고도 계속 같은 패턴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셨다는데, 어쩌면 10년 이상 몸을 혹사한 대가 일지도 모른다. 혹은 의료 보험이 없으셨다는데, 바쁜 일상과 보험 문제로 자기 몸의 증상을 애써 외면해서 병을 키운 것일 수도 있다. 잠 잘 시간도 없는데 병원갈 시간을 어떻게 냈겠는가? 어떤 이유에서건 그렇게 어렵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빚을 다 갚고 얼마 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얘기는 읽는 사람을  허탈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인생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 열심히 노력을 한다고 해도 (혹은 그렇다고 믿는다 해도), 그것보다 더 한 노력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상상도 못할 노력을 하고 있고, 내가 처한 처지를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힘들고 내 상황이 힘들어 보여도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 연민에 빠져서도 안된다.

 

나는 가끔 스스로 힘들다고 느낄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현재 지금 상태의) 나와 처한 상황을 바꾸자고 하면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자고 하면) 몇명이 그렇게 하자고 할까? 생각보다 아주 많을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의 동포들.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 그 외 여러 빈곤한 국가들. 자유가 억압되고 기회가 보장되는 않는 사회의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나의 위치는 누군가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사치일 수 있다. 그러니 힘들다고 투정 부리기 전에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힘들어하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뛰면서 컵라면을 먹었다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아무리 바빠도 뛰면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도 안해봤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르바이트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식사 대신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물을 붓고 뛰면서 (아르바이트 장소에 갈 때까지) 컵라면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사실 남자들은 빨리 먹으면 1-2분이면 앉아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얼마나 바빴길래 앉아서 기다릴 1-2분이 없었을까? 유튜브로 이 분의 일상을 보면 매사 뛰어다닌다.. 도시락 배달도 뛰고, 신문 배달도 뛰고, 라면도 뛰면서 먹고….

 

이런 삶을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한숨만 나온다. 물론 이분의 삶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을 혹사한 대가는 결국 본인에게 돌아온다). 다만, 내가 한 노력이 너무 적게 보인다. 내가 하고 있는 투정은 너무 철없어 보인다. 매번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삶을 상기시키면서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살면 의외로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해질 수 있다. 특히 가족이 있다면 이런 태도를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오히려 가정 불화가 생길 수 있다. 스스로 다음 다 잡고 살겠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지 적당함과 중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책은 가끔 보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으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하루에 2시간 자고, 7-8개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뛰면서 컵라면을 먹는 삶도 살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하던 노력의 10% 정도는 더 하려고 노력하는 삶은 살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의 나는 뛰면서 밥을 먹거나 하루 2-3시간을 자야 하는 상황은 아니기에. 감사 또 감사의 마음이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이종룡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밥도 편하게 앉아서 드시고 잠도 편하게 누워서 실컷 주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