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뭐 워낙 검진이 잘 되어있고 보편화되어 있어서 1-2년에 한 번씩은 쉽게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비하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아주 구식이라서 뭔가를 한번 받으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내시경 등의 시험은 미국에서는 상당히 위험하고 고난도의 procedure로 간주된다. 따라서 웬만하면 잘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뭐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한국에서는 아프기만 하면 항생제 주사를 주는 것에 비해서 미국은 감기 정도에는 절대로 주사를 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그동안 생각만 해오다가 이제는 나이도 있고, 왠지 위와 대장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담당 의사 (Primary Physician)을 슬슬 구슬렸다. 참 좋으신 분이신 것 같았다. 일단 이런 저런 이유로 속이 좀 안 좋고 지금까지 한 번도 위와 대장의 내시경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referral을 꼭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본인은 수긍을 하는데 과연 내시경을 직접 하는 2차 의사 (GI 의사)가 과연 허가를 (Approval)을 해 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referral을 부탁했다. 그게 작년 가을쯤 얘기다. 한 달쯤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는 일절 받지 않는다. 워낙 스팸 전화가 많고, 머 자기들이 급하면 꼭 보이스 메일을 남기니까 나중에 들어보고 필요하면 내가 다시 전화를 하고는 한다. 보이스 메시지를 들어보니 내시경 때문에 전화를 했단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잡았는데, 그게 바로 이번 주 초였던 것이다. 처음에 예약을 할 때는 기분 좋게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내시경 날짜가 다가오자 점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직접 내시경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어떻게 준비를 하는지는 봐 왔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과정은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느끼한 액체를 계속 마시는 것도 결코 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내 와이프는 그 액체를 먹다가 내시경 당일날 다 토하는 것을 불과 몇 달 전에 봤다.
암튼, 그렇게 조금씩 걱정을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메일이 날라왔다. Colonoscopy (대장 내시경) 준비하는 방법 등등... 에 대한 안내문이었다. 그런데 잠깐! 나는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신청을 했는데 위 내시경 얘기는 없고 대장 내시경 얘기만 있는 것이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어차피 속을 다 비워내고 고생하는 바에는 위와 대장을 동시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괴로운 과정을 또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계속 이 메일을 보냈다.
"제가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하는 것을 확인해 주세요".
그런데, 답이 없다. 한 2 주가 지나고 또 메일을 보냈다. 그래도 답이 없다. 미국은 확실하게 이메일로 증거를 남겨놔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예를 들어 전화로 무엇을 예약을 해도 나중에 보면 다른 경우도 참 많다. 따라서 나중에 따져야 할 일이 생길 때에는 가장 확실히 이메일이나 문서가 제일 좋은 것이다. 나는 정말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해야 했다!!! 결국에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고,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더니 애매하게 대답을 한다.
"제가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받는게 맞습니까?"
"응 아마 그럴거야"
답을 듣기는 했는데, 뭔가가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뭔가 답을 들었으니 그냥 넘어간다. 그런다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검사받기 며칠 전이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확실히 맞단다. 오케이. 이제는 안심이 된다. 하지만 마음이 슬슬 불안해진다. 검사는 이번 주 목요일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하루 off를 신청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일단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그런데 7주일 내에 음성이기만 하면 된단다. 음.... 확실히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뭔가가 어설프다. 코로나 상태가 의심이 되면, 당일날 빠른 검사를 해서 결과를 보고 병원 안으로 들이는 게 맞지 않나? 일주일 내에 코로나 음성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과정이 그렇듯이 너무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때로는 하라면 하는 게 제일 쉽다.
그래서 그 대형 병원의 여러 지점 중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토요일 날 코로나 검사를 하러 드라이브 스루로 가서 간단히 검사를 받았다. 며칠 걸린다는 대답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다음날 결과를 보내줬고, 결과는 예상한 대로 음성. 오케이. 이제는 준비한 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화요일 저녁이 되었다. 화요일 저녁이 내가 제대로된 식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당장 내일 아침 부터는 액체 종류만 먹어야 한다. 화요일 마지막 저녁 식사에 평소와는 달리 밥을 좀 더 푸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왠지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많이 배고프겠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드디어 수요일 아침이 시작되었다. 일단 큰 문제가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금지 음식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커피와 술은 전날부터는 금지라고 나와있다. 술이야 뭐 아무래도 검사를 위해서는 당연히 안 좋을 것 같으니까 안 마시면 되는데 하루에 2-3잔을 마시던 커피를 안 마시자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매일 즐기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두통이 심해진다. 특히 쪽 두통이 심해지는데 카페인 중독의 금단 증상이다. 녹차는 또 된다고 나와있어서, 일단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음식은 못 먹고 액체 종류만 먹으라고 해서 녹차를 계속 마시기 시작했다. 녹차에도 많지는 않지만 카페인이 들어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카페인 공급은 되는 모양이다. 두통이 아주 심하지는 않은데 하루 종일 멍하다. 이 멍한 상태로 하루 종일 지내야 했다. 액체 정류 중에도 붉은색, 검은색은 안되고 노란색이나 녹색 종류만 가능하단다.... 이렇게 되면 먹을게 별로 없다. 친절하게 미국 사람들이 감기 걸릴 때 자주 먹는 닭 수프 (Chicken noodle soup)의 국물을 먹으면 좋다고 설명이 되어있다. 물론 건더기는 먹으면 안 된다. 우리 와이프가 이전에 Chicken noodle soup을 전날 먹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Chicken noodle soup 국물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연하지만 배는 고프다!!
문제는 회사 일이다. 미팅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일부러 다른 날로 잡았다) 그래도 몇 개의 미팅을 해야 한다. 사정상 미팅에 참여해서 듣기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주로 많이 말을 해야 하는데, 이날은 웬만하면 조용히 듣기만 하자고 다짐은 했다. 하지만, 뭐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가? 한 개, 두 개 미팅이 진행이 되면서 열심히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배는 점점 고파졌다. 다들 아시겠지만 말을 많이 하면 배가 고프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먹을 수 있는 것 닭 수프 국물밖에 없다. 그렇게 거의 하루를 집에서 보내고, 오후 4시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병원에서 알려준 약들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각오는 되어있다. 특히 밤새 화장실을 들락 거릴 각오 말이다. 누구는 화산이 분출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하고, 누구는 그냥 막 쏟아져 나오는 게 꼭 소변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맞는 것 같다.
그럼 병원에서 알려준 먹거나 마셔야 할 품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Generic MiraLax (polyethylene glycol 3350 powder). One 14 dose (8.3-ounce) bottle.
• Generic for bisacodyl (Dulcolax) 5 mg tablets. One box.
• Magnesium citrate. One 10 ounce bottle (not red or purple).
* Four tablets of white simethicone (Gas-X) 80mg each.
• Gatorade (yellow or green only). Two 32-ounce bottles. Purchase from your local grocery store.
처음 이 목록을 받았을 때는 뭐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뭐 처음이니까). 그런데 와이프가 보더니 자기가 먹은 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때도 뭐 병원이 다르니까 다른가 보다 했는데, 모든 과정이 다 끝난 지금 이게 얼마나 신의 한 수였는지 깨닫는다. 나는 앞으로 다른 병원에서 다르게 처방을 줘도 이 방법대로 할 생각이다. 어차피 목적은 배속에 있는 모든 내용물을 없애는 거니까. 혹시 노파심으로 얘기하자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방법은 그냥 참고만 하시고 담당 의사가 권하시는 방법대로 하시기를 권합니다.
1. 전날 오후 4시. Generic for bisacodyl (Dulcolax) 5 mg tablets. One box.
한국에도 잘 알려진 변비약인 둘코락스 2알 먹기. 우리 와이프 말로는 자기는 둘코락스 먹는 건 없었다고 한다. 병원마다 추천하는 방법이 다른가 보다. 암튼 둘코락스 2알을 먹기는 했는데, 뭐 별 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뭐 다음 스텝으로 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계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2. 전날 오후 6시. Generic MiraLax (polyethylene glycol 3350 powder). One 14 dose (8.3-ounce) bottle. + Gatorade (yellow or green only). Two 32-ounce bottles. Purchase from your local grocery store.
이게 신의 한 수였다!! 예전부터 자주 들었고, 우리 와이프도 그렇게 먹었는데, 내시경 전날은 하얀 액체를 몇 병 주는데 그걸 먹는 게 그렇게 고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와이프도 2병째인가 3병째에서는 마시다가 다 토해냈다. 말 그대로 엄청 느끼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니 고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상했던 공포의 하얀 병이 없었다. MiraLax라고 하는 분말 파우더 한 병과 엄청 큰 게토레이 2병이 다였다. MiraLax라고 하는 분말 파우더 한 병을 2 병의 게토레이 (노란색만!)에 나눠서 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병은 오늘 마시고 다른 한 병은 내일 마시면 된다. 일단 정확히 가루를 반 반 나누기도 그래서, 대충 눈대중으로 파우더를 반으로 나눠서 게토레이 2병에 나눴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했던 (?) 시음을 시작했다. 각오를 단단히 했다. 분명 속이 느글거리겠지? 그래도 참고 마시자. 오늘만 하면 된다.
드디어 한 모금 꿀꺽.............
..........
엥? 맛이 그냥 게토레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만 느껴질 뿐, 그냥 게토레이와 별 차이가 없다!! 만세!!!
그렇게 커다란 게토레이 한 병을 6-7시 사이에 다 마셨다. 그리고 한 20분이 지났을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렇게 5-6번 정도를 화장실을 들락 거리니까 시간이 대략 밤 10시쯤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큰 반응은 오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들은 얘기가 있어서 "아마도 밤새 화장실을 들락 거리겠구나"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깨어나니 아침!!!
엥? 뭐야? 나는 밤에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갔는데?? 만세!!
예상과는 달리 숙면을 취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자연이 나를 부른다! 당연히 화장실로 직행.
내용이 너무 길어서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받은 당일 얘기는 다음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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